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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정신건강 정문가 릴레이 기고 1. 정신건강편] 정신건강, 충분한 시간·적절한 치료·주변 이해 중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6-09-23 18:01 조회 82

<기고> 정신건강, 충분한 시간·적절한 치료·주변 이해 중요

- 송제헌 전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국립나주병원 의료부장



불안과 우울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매우 흔하게 접하는 증상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중요한 일에 실패했을 때, 혹은 예상하지 못한 상처를 경험했을 때 우울한 마음이 찾아오곤 합니다.

진료실에서는 때때로 “이제는 잊어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과거를 잊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시험에 낙방한 일, 사기를 당한 일, 모욕을 당한 일, 억울한 일을 겪은 경험 등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미 지나간 사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머리로는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의 후회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환자에게 너무 쉽게 “잊으라”고 말하면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 마음을 모릅니다. 잊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미련과 억울함이 남아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이 지속되면 결국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저 역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에 빠졌고,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았으며 평소 좋아하던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일만 반복해서 떠올랐습니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생각났습니다.

그때 비로소 진료실에서 만났던 환자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것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구나.’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일에 실패했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가’, ‘내 자존심과 자존감이 정말 이 한 가지 일에 달려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상황을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상이 곧바로 즐거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우울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일주일 뒤 뜻밖에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분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자신감이 다시 생겼고,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습니다. 그 순간 한 가지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마음도 이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구나.’

아무리 생각을 바꾸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해도 겨우 유지되던 마음이,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자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에서 모든 문제가 이렇게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 일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도 있고, 되돌릴 수 없는 관계도 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억울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울한 마음을 스스로 떨쳐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우울은 의지만으로 금세 벗어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때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약물치료나 상담치료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이해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울한 사람에게 “왜 아직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묻기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입니다.

정신건강은 단순히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와 상처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힘을 찾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치료, 그리고 주변의 이해가 함께해야 합니다.



출처: 전남매일(www.jndn.com/1790124666440178130)